별 만드는 나무들 별 만드는 나무들 이상국(1946- ) 설악산 수렴동 들어가면 별 만드는 나무들이 있다 단풍나무에서는 단풍별이 떡갈나무에선 떡갈나무 이파리만한 별이 올라가 어떤 별은 삶처럼 빛나고 또 어떤 별은 죽음처럼 반짝이다가 생을 마치고 떨어지면 나무들이 그 별을 다시 받아내는데 별만큼 나무가 많은 것.. 詩 2011.10.12
연꽃 연꽃 오세영 (1942- ) 불이 물 속에서도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은 연꽃을 보면 안다. 물로 타오르는 불은 차가운 불, 불은 순간으로 살지만 물은 영원을 산다. 사랑의 길이 어두워 누군가 육신을 태워 불 밝히려는 자 있거든 한 송이 연꽃을 보여 주어라. 닳아 오르는 육신과 육신이 저지르는 불이 아니라, .. 詩 2011.10.06
바람 나뭇잎 바람 나뭇잎 고형렬(1954- ) 나 오랜 옛날에 나무인 적 있었다 다른 세상의 햇살이 지나가고 치맛자락을 흔들어대는 바람이 불던 날 나 그때 나무였던 것이 분명하다 이제야 그 아련한 추억들이 수런인다 우주 낯선 강 멀리 키는 하늘에 닿아 수도 없이 돋아나오는 나뭇잎들이 되면서 나는 비로소 아주 .. 詩 2011.10.05
꿈꾸는 가을노래 꿈꾸는 가을오래 고정희(1948-1991) 들녘에 고개숙인 그대 생각 따다가 반가운 손님 밥을 짓고 코스모스 꽃길에 핀 그대 사랑 따다가 정다운 사람 술잔에 띄우니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늠연히 다가오는 가을 하늘 밑 시월의 선연한 햇빛으로 광내며 깊어진 우리 사랑 아득히 흘러가네 그 위에 황하가 서.. 詩 2011.10.05
감나무에서 감잎 지는 사정을 감나무에서 감잎 지는 사정을 오태환(1960- ) 감나무에서 감잎 지는 사정을 말해서 무엇하리 하, 몸의 귀 지천으로 창궐터니 귓불마다 진사( 辰砂) 무늬 철화( 鐵華 )무늬로 가생이를 두르며 쟁강쟁강 잉걸불 켜더니 참지 못하고 참지 못하고 지네들끼리 저 지경으로 붐비며 지는 사정을 더 말해 무엇하.. 詩 2011.10.01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이경임(1963- ) 새가 날아갈 때 당신의 숲이 흔들린다 노래하듯이 새를 기다리며 봄이 지나가고 벌서듯이 새를 기다리며 여름이 지나가고 새가 오지 않자 새를 잊은 척 기다리며 가을이 지나가고 그래도 새가 오지 않자 기도하듯이 새를 기다리며 겨울이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 .. 詩 2011.09.30
해산 해산 이재무 (1958-) 늦은 밤 산속 임자 없는 밤나무들 다 익어 영근 밤알 연달아 토해놓느라 날 새는 줄 모른다 도토리나무도 덩달아 바빠져서 바람을 핑계로 몸 흔들어댄다 아람 벌어져 떨어지는 열매듣 이마 때릴 때마다 끙, 하고 산은 돌아눕는다 설핏 잠에서 깬 다람쥐 두리번거리다 곧 귀를 열어젖.. 詩 2011.09.29
도라지꽃 도라지꽃 정한용(1958- ) 흰 꽃이 피었습니다. 보라 꽃도 덩달아 피었습니다 할미가 가꾼 손바닥만한 뒤 터에 꽃들이 화들짝 피었습니다 몸은 땅에 묻혀 거름이 되고 하얀 옷깃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무더기로 손 쓸립니다 수년 전 먼저 길 떠난 내자(內子)를 여름빛으로 만나 한참을 혼자 바라보던 할애.. 詩 2011.09.29
해거리 해거리 하종오(1954- ) 원래 남의 밭에 있던 것을 슬쩍 해와서 화단에 심어놓은 뒤로 내 속셈 모르는 척 적작약이 다신 꽃을 피우지 않았답니다. 제까짓 놈 제까짓놈 언제까지 영 꽃 안 피우는지 두고보자 벼른 지 몇 해 되는 사이에 그만 나는 눈길을 거두었고, 되는 일이 없었답니다. 날 사로잡아봐야 .. 詩 2011.09.27
우리나라 꽃들엔 우리나라 꽃들엔 -김명수(1945- ) 우리나라 꽃들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 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건드리면 끊어질 듯 바람불면 쓰러질 듯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날을 새봄이라 믿는다 우리나라 나무들엔 아픈 이름 너무 많다 이를 테면 쥐똥나무 똘배나무 지렁쿠.. 詩 2011.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