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
이재무 (1958-)
늦은 밤 산속 임자 없는 밤나무들
다 익어 영근 밤알 연달아 토해놓느라
날 새는 줄 모른다 도토리나무도
덩달아 바빠져서 바람을 핑계로
몸 흔들어댄다 아람 벌어져 떨어지는
열매듣 이마 때릴 때마다 끙, 하고
산은 돌아눕는다 설핏 잠에서 깬 다람쥐
두리번거리다 곧 귀를 열어젖혀
토독토독 열매를 세다 다시 잠든다
저 멀리 인간의 마을은 불 꺼진지 오래
신혼방 엿보고 오는 길인지
얼굴 불콰한 달빛
숨가쁜 소리로 환한 숲속
나무들 몰래 일어나 바심하느라 여념이 없다
내일 다산(多産) 마친 나무들 눈빛 더욱 맑고
몰라보게 몸은 수척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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