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리

제비꽃2 2011. 9. 27. 12:40

 

 

 

해거리

 

하종오(1954- )

 

 

원래 남의 밭에 있던 것을 슬쩍 해와서

 

화단에 심어놓은 뒤로 내 속셈 모르는 척

 

적작약이 다신 꽃을 피우지 않았답니다.

 

제까짓 놈 제까짓놈 언제까지 영 꽃 안 피우는지

 

두고보자 벼른 지 몇 해 되는 사이에 그만

 

나는 눈길을 거두었고, 되는 일이 없었답니다.

 

날 사로잡아봐야 흰 꽃송이나 도둑당하지 싶어서

 

에잇 고얀 사람 에잇 고얀 사람 지 맘대로 하라는 건지

 

적작약이 잎사귀만 내어 보이고 일찌감치 시들었답니다.

 

서로 본체만체 하는 동안에 비로소 알았을까요.

 

오래 내 눈빛을 받아야 저도 꽃만울을 맺고

 

제 꽃봉오릴 오래 보여주면 나도 잘 된다는 걸.

 

올해는 희디흰 꽃송이를 송이송이 벙글었답니다.

 

아니, 아니, 한해 더 넘기면 꽃을 피워서는 안될 일이

 

적작약에게 있었을 겁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산  (0) 2011.09.29
도라지꽃  (0) 2011.09.29
우리나라 꽃들엔  (0) 2011.09.27
쑥부쟁이 사랑  (0) 2011.09.26
나무 성자(聖者)  (0) 2011.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