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지대 <콜로나다>를 떠나 천년의 도시 <프라하>로 이동한다.
40여년 전 어느 시인의 싯구절에서 익숙했던 프라하 소녀!
1968년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는 반소련.반독재 자유화운동이
탱크를 앞세운 소련의 군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된 사건을 소재로 했던 시가
희미하게 떠오른다.
자유화운동의 무산으로 20년의 춥고 우울한 공산독재를 견뎌야 했던 체코는
1989년 벨벳혁명으로 자유화 민주화에 성공하고,
1993년에는 국민투표를 통해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된다.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분리 독립한 두나라의 분리는 <벨벳혁명>에 빗대
<벨벳이혼>이라 불린다.
창밖으로 계속되는 드넓은 평야지대,
동유럽이 서유럽과 구소련의 중간지대이기도 했지만'
서유럽 국가나 구소련 등이 저 비옥한 토지가 탐나기도 했으리라.
<블타바강>이 프라하 시내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다.
<얀 후스> 동상과 주변의 프라하 구시가 광장 풍경
체코의 종교개혁은 마틴 루터보다 1세기 앞서서 얀 후스(Jan Hus)에 의해 전개 된다.
프라하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그는 로마교황청의 부패와 세속적인 부의 축적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종교개혁을 촉구했다.
날로 부패해가는 로마 교회와 사제들로 인해 고통받던 체코인들은 이에 지지를 보낸다.
후스가 로마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문제를 제기하자,
교황은 1415년 그를 화형에 처한다.
또한 후스가 활동했던 프라하 전체를 교황청 재판부에 회부해 징계한다.
후스의 죽음으로 그를 따르며 종교개혁을 열망하던 사람들은 본격적인 투쟁을 전개하게 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교황청 십자군이 체코로 쳐들어와 후스파 체코인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한다.
종교전쟁으로 황폐해지고, 14세기 말의 흑사병으로 체코의 경제와 사회는 극도로 피폐해진다.
전쟁에서 후스파가 승리 함으로 제한적으로나마 종교의 자유를 누렸으며,
개신교를 받아드린 보헤미아는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까지 백여 년간 고립된다.
후스의 종교개혁운동은 유럽 전역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후 대대적인 종교개혁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1915년 후스 사망 500주년을 맞아 프라하 구시가의 중심가에 동상이 세워진다.
후스를 중심으로 두 그룹의 인물상을 묘사하고 있는데,
하나는 종교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스파의 전사들이고,
다른 하나는 체코의 부흥을 상징하는 한 젊은 어머니의 모습이다.
후스가 설교했으며, 황금장식이 유명한 쌍둥이 첨탑의 <틴성당>
'해외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유럽 여행 8, 카를교 가는길에 풍경과 카를교 주변 풍경 (0) | 2012.09.28 |
---|---|
동유럼 여행 7, 체코 프라하 구시청사 시계탑 풍경 (0) | 2012.09.28 |
동유럽 여행 5, 온천 휴양지 <까를로비바리>풍경 (0) | 2012.09.27 |
동유럽 여행 4, 온천 휴양도시 체코 <까를로비바리> (0) | 2012.09.27 |
동유럽 가기 3, 작은 베네치아 지구 <밤베르크> (0) | 2012.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