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슬픈 공복
제비꽃2
2012. 11. 27. 10:29
정진규(1939- )
거기 늘 있던 강물들이 비로소 흐르는게 보인다
흐르니까
아득하다 춥다 오한이 든다
나보다 앞서 주섬주섬 길 떠날 채비를 하는 슬픈 내 역마살이 오슬오슬 소름으로 돋는다
찬 바람에 서걱이는 옥수숫대들,
휑하니 뚫린 밭고랑이 보이고
호미 한 자루 고꾸라져 있다
누가 던져두고 떠나버린 낚시대 하나 홀로 잠겨 있는 방죽으로 간다
허리 꺾인 갈대들 물속 맨발이 시리다
11월이 오고 있는 겨울 초입엔 배고픈 채로 나를 한참 견디는 슬픈 공복의 저녁이 오래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