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바람 나뭇잎
제비꽃2
2011. 10. 5. 10:28
바람 나뭇잎
고형렬(1954- )
나 오랜 옛날에 나무인 적 있었다
다른 세상의 햇살이 지나가고
치맛자락을 흔들어대는 바람이 불던 날
나 그때 나무였던 것이 분명하다
이제야 그 아련한 추억들이 수런인다
우주 낯선 강 멀리 키는 하늘에 닿아
수도 없이 돋아나오는 나뭇잎들이 되면서
나는 비로소 아주 먼 그 옛날 내가
귀여운 애기잎사귀들을 흔들어주면서
바람으로 돌아오는 나를 보았었다, 그때
나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서야 아련한 추억들이 살아난다
파란 바람아 불어오니라 불어가니라
알려고 하는 자에게만 비밀을 일러주고
저 나뭇가지들을 흔들어주어라
나 옛날에 바람이었던 때가 즐거웠다
그때가 아름다운 때였음을 알게 되었다.